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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문화도시 ②] "전쟁의 잔혹함을 기억하다"...카이저 빌헬름 교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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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사진=gedaechtniskirche-berlin.de 갈무리)
[글로벌홈 이정연 기자] 건축물은 기호다. 무엇인가를 상징한다. 뉴욕 자유의 여신상은 자유주의를, 9·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는 자본주의를, 이집트 피라미드는 권위를,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는 오일머니의 힘을 내포한다. 건축물은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. 이 장소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건축가나 공간을기획자가 말하는 바를 경험한다. 읽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.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건축가 가우디가 말하는 '절대자를 향한 경외와 존경'을 느낄 수 있는 이유도 같다.

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전쟁의 잔혹함을 상징한다.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로 돌아가야 한다. 1891년 빌헬름 2세는 독일 첫 번째 황제 '카이저 빌헬름 1세'를 기념하기 위해 이 교회를 지었다. 교회는 화려했다. 건축가는 교회를 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. 교회 안은 약 3000㎡ 넓이 모자이크 벽화로 꾸몄다. 2,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배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. 종탑은 높이는100m가 넘었다. 종탑 주변은 작은 탑 5개가 애워 쌓았다.

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라졌다. 1943년 한 번, 1945년 두 번 폭격을 받았다. 건물 절반 이상이 무너졌다. 베를린은 건물을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했다. 건물이 붕괴될 수도 있으니 철거할 계획도 세웠다. 시민들은 반대했다.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자고 외쳤다.

1950년대 베를린은 건물 처리를 공모에 붙였다. 1957년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이 낸 건축안이 채택됐다. 아이어만은 건물을 부수거나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. 그 곁에 새로운 건물을 덧붙였다. 이 교회가 담은 역사를 지우지 않겠다는 의지였다.

재탄생한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구관과 신관으로 나뉜다. 구관은 옛 폐허 상태 그대로 보존한 모습이다. 지금은 기념관이 됐다. 신관은 본래 교회 기능을 맡았다. 새 교회는 콘크리트와 유리블럭을 결합한 모습으로 등장했다. 밤이되면 빛이 난다. 외벽과 내벽 사이 램프가 어두워지면 빛을 발한다.

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베를린 번회가에 자리한다. 베를린은 도시 한 복판에 전쟁의 잔혹함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그대로 뒀다. 이 교회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전쟁의 잔혹함을 알리기 위해서다. 마치 부러진 립스틱처럼 보이는 폐허지만, 지난 역사를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주는 상징물로 거듭났다.

이정연 기자 ljy2@globalhome.co.k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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